제주4. 추억과 동화

괴나리봇짐 십 일

제주4 추억과 동화

 

이 글은, 2003년 11월 18일(화) ~ 28일(금)

도보와 버스를 이용한 제주도 10박 11일 여행을 정리한 것입니다.

 

무조건 렛츠 고우~!

순순히 열쇠를 받아들인 집 안엔 "나 말고 또 오기로 되어 있는 누구" 같은 건 없었다.

미리 들었던 그대로 고장나 물이 안 나오기는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샤워 호스를 끌어다가 물통을 채우면 거뜬히 쓸 수 있는 변기가 있는 욕실을 비롯해, 딱히 살림살이랄 건 거의 없지만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된 집이었다.

 

그래도 열흘너머 머물 집이니까 방이며 주방이며 욕실이며 싱크대와 냉장고 속까지 쓸고 닦고 대청소에

걸레랑 수건 빨래도 해놓고 짐을 풀고 점심까지 지어 먹고 나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비도 오고 하니 그냥 쉬고 내일부터 움직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은 맑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며

모처럼 예까지 왔는데 일분 일초가 아깝다는 생각에 그냥 떨치고 나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또 실수였다.

그대로 몸살 나서 다음날을 공치고 말았으니 무슨 일에건 욕심이 앞서면 반드시 탈이 나고 마는 법.. ㅡ . . ㅜ ;;

 

원래 첫날 계획은 천제연 폭포 - 여미지 식물원 - 테디베어 박물관이었는데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그 비를 맞으며 폭포와 야외 식물원을 돌아다닌다는 것도 그렇고

시간도 어중간한 것 같아 테디베어 박물관만 가는 걸로 마음을 정하고 집을 나섰다.

 

막상 집을 알고나니 신부님의 복잡한(혹은 너무 간단한?) 지도와 달리

집 앞 골목을 나와 12번 일주도로를 따라 그냥 쭉 올라가면 중문 관광 단지 입구인 것을..

박물관까지 다 걸어도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으흐흐~ ^ ^ ;

 

아무튼 그렇게 둘레둘레 동네 구경도 하고 중간에 중문 성당에 들러 감사와 여행길 동반을 청하는 기도도 드리고

걷고 걸어 박물관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가방도 옷도 많이 젖어 있었다.

 

▶ 테디베어 박물관

* 연중무휴 / 주차 무료

* 개장시간 : 9시 ~ 7시(매표 마감 6시)

   (성수기 - 7/16 ~ 8/25 : 9시 ~ 10시(매표 마감 9시))

* 입장료 : 6천원(청소년 5천, 어린이 4천, 장애인+의경+하사 이하 군인 4천)

* 20인 이상 단체 할인(각 1천원씩) / 제주도민 - 개인 요금 적용 50% 할인

* 성인 1인당, 36개월 이하 어린이 2인까지 무료

* 관람소요시간 : 40 ~ 90분(평균 1시간)

* 문의 : 064)738-7600  www.teddybearmuseum.com

* 박물관 홈페이지에 회원등록하고(홈페이지 상단 메뉴 <TBM Plaza> 아래

   가입, 로그인, 쿠폰받기 있음) 할인권 출력해가면 본인 확인 후 1천원 할인

 

어렸을 적 우리 집엔 곰인형이 둘 있었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이미지에 짧은 갈색 털(이라기보다는 싸구려 천에서 일어나는 보풀같은 느낌)을 가진 녀석과 회색이었는지 하늘색이었는지 그 둘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색이 섞였던 것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세월과 함께 빛이 바랬음에도 얼핏얼핏 반짝이는 부분을 본 것도 같게 만들던 긴 털을 가진 또 한 녀석..

지금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 봐도 둘 중에 어느 것이 내 것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뭔가 약간이나마 긍정적인 이미지로 간직하고 있는 두 번째 녀석이 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순기적 습성을 늦도록 버리지 못하고 전용 색동 담요 귀퉁이를 빨던 셋째의 침냄새가 축축하게 밴 갈색 둥근 귀가 뇌세포 어느 구석에선가 늘어져 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봐도 역시..

아.. 아니면 둘 다 내 것이 아니었나?! 새우깡 사건때 처럼?! ㅡ . . ㅜ ;;

 

뭐 아무튼, 누구나 어린 시절 한때를 그와 함께 울고 웃고 잠들었을 그 곰인형들을 만나기 위해 경건한(?!) 마음 가짐으로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서 비에 젖은 잠바며 가방이며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입구 오른쪽 사물함에(100원을 넣고 이용 후 반환) 넣어두고 또다른 세상, 마치 4차원의 세계 저편 어디엔가 실재할 것만 같은 곰돌이, 곰순이 세상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엔 정말로 또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 설명 : 저~ 위에서부터, 콧등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간디, 몸통도 곰이었으면 유쾌하게 웃었을텐데 사람 몸 위에 달린 곰 머리가 징글맞다 못해 유전공학의 가공할 미래에 대한 경고를 보는양 무섭고도 끔찍했던 로댕의 키스, 엘비스 프레슬리, 쌍꺼풀 깊게 패인 눈매가 상당히 우스운 비틀즈, 마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마더 데레사, 몹시도 늘~씬한 마이클 조던, 금성드뭇 널려있는 머리카락이 재미있는 나폴레옹,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처음엔 장예모 감독의 영화 <진용>이 떠오르다가 계속 보고 있으려니 애들이 웅성웅성 움직이는 것만 같더니 이후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곰돌이로 보이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을 뿜어내는 진시황릉, 눈매가 쓸쓸한 고흐의 자화상,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웃는 듯 마는 듯한 입매가 걸작인 다빈치의 모나리자, 자못 심각한 밀레의 만종, 반소매 메리야스(일명 난닝구)와 속곳(일명 사각빤쑤) 입으신 백발의 조물주가 엄청 웃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테디베어? 테디베어!

1902년 11월, 미시시피로 곰사냥을 나갔던 미국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애칭 Teddy) 대통령이 한 마리의 곰도 잡지 못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보좌관이 어린 곰을 생포해 와 사냥하기를 권했으나 정당치 못한 일이라며 풀어주었다고 한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지의 만화가 베리만(Clifford Berryman)이 이 에피소드를 한 컷 만평으로 그려 신문에 실었고 대통령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미국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널리 알려지자 뉴욕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던 모리스 밋첨(Morris Michtom)이 자신이 만든 곰인형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애칭인 '테디'를 붙여 '테디베어'라고 이름지어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곰인형은 날개돋친 듯 팔려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오늘날 '테디베어'는 크기, 형태, 재질에 상관없이 곰의 모습을 한 완구를 통칭하며 일반적으로 봉제 곰인형을 말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동화일 수 없는 이야기

가시는 걸음걸음 엉켜붙은(!) 닭들(?)의 눈꼴시린 퍼포먼스 사이를 씩씩하게(?) 누비며 추억과 동심의 동화 속 세상에 흠뻑 취해 있다가 문득 "누구나 어린 시절 한때를 그와 함께 울고 웃고 잠들었을"의 "누구나"에 한번도 속해보지 못했을 무수한 어느 나라 어느 집의 아이들을 생각해내고 마음이 울적해졌다.

꿈도 없이, 삶이 아닌 생존에 매달려 절박한 숨을 쉬는 아이들에게 223,783,793원 짜리 루이뷔똥 곰인형이나 전용 가방과 의자까지 갖추고 주인인 영국 유명 배우와 함께 온갖 곳을 여행한 곰인형 이야기는 과연 동화일 수 있을까..?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를 닮은 누더기 곰돌이의 슬픈 눈이 오래도록 발길을 붙잡았다.

 

05.09.15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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